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제가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7~80년대는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산업적으로는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유신체제, 12.12 사태,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그 이후 군부독재까지 정말 어지럽던 시기였죠.
그 기간 동안 어렸던 저는 그 복잡한 상황을 전혀 몰랐고 보통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참 후 성인이 되어서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어른들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겠구나 합니다.
이제 3주가 지났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발생하여 마치 몇 달이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런 심정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오늘이 24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이네요. 하하.. 참...
지난 2019년에 개봉된 영화 '두 교황'은 2013년 로마 가톨릭 역사상 두 번째로 동 시기에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된 이야기를 다룹니다. 바로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행기표를 예약(직접?)하려고 하는데 상담원이 이름을 물어봅니다. 그때 본명을 대자 상담원이 교황과 이름이 같네요 하며 주소를 물어보는데 막 이사 와서 모르겠고 아무튼 바티칸이라고 말하자 상담원이 웃기네요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리며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미 보이듯이 두 교황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그중 프란치스코가 주인공입니다. 이미 시작 부분에서도 보였지만 프란치스코는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데다 보통사람들 특히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게 바로 베니딕트 교황입니다. 그러니까 라이벌이지요. 영화는 시작 장면후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으로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한 회의(콘 클라베)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던 사람이 바로 위 두 명의 주인공이지요. 회의는 업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베니딕트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다시 영화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시점으로 점프하는데 그때 가톨릭 교회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고 교황은 그 중심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때 추기경을 사임하려고 교황에게 허락을 요청하는데 교황은 허락 대신 로마로 오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사무적으로 약간은 날카롭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더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베네딕트는 체제를 지탱해야 하는 교황으로서의 의무하에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적하기 어려운 처지를 이야기하며 양심과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로움을 보입니다. 반면 프란치스코는 정의를 그동안 이야기해 왔지만 사실 젊은 시절 독재정권하에서 그에 침묵함으로 독재에 대항하던 동료 성직자들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깊고 깊은 회한을 이야기하며 자신에 대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고 또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베네디트 교황은 자신보다는 프란치스코가 현재의 교회를 더 잘 이끌 것이라며 퇴임할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는 자신이 교회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음을 천명하고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를 요청합니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뒤를 잇지요. 영화의 마지막은 서로 다른 취미 중 유일하게 같은 취미였던 축구를 같이 보면서 즐거워하는 두 명의 교황의 모습을 비추면서 끝이 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인 프란치스코의 탈권위적이고 약자의 편에 서는 모습에서 진짜 성직자의 모습이 저런게 아닌가 생각도 되지만 시스템의 정점에 선 사람으로서 그 권위를 함부로 쓰기보다는 고민하고 그 결과에 대해 괴로워하는 베네딕트의 모습도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사람이 상대방의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정하고 올바름을 함께 찾아가는 모습은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제는 기억으로만 존재할 줄 알았던 것을 체험했던 지난 몇주간의 시간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고 현재도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이럴 때 불쑥 등장한 것 같은 크리스마스이브는 반갑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네요.
우리나라가 이번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민주적으로 좀 더 성숙되어지고 올바름에 대해 대립하기보다는 함께 찾아가는 그런 나라 그런 사회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여러분 평안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