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본 만추 이야기
사람이 웃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재미있어서 행복해서 혹은 어이가 없어서.
다양하겠죠. 보통사람은 아마도 하루에도 수십 번 웃을 겁니다. 깔깔깔 소리 내서 웃거나 그냥 미소를 짓거나 말이죠.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그리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저도 가끔 너무 힘들어 얼굴이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기란 어렵겠죠.
많은 영화 장르에서 멜로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야입니다. 별로 터프 하지 않으면서도 액션이나 스릴러물을 좋아하고 그 것도 아니면 코메디를 선호합니다. 멜로는 정말 가끔 보는데 볼게 정말 없어서 볼 때가 많지요. 어렸을 때는 그나마 좀 봤는데 험한 세상에 감정이 메말라 버렸는지 멜로물에는 감정이입이 잘 안돼서 말이죠.
탕웨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것은 색계라는 약간은 제목에서부터 외설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에서입니다. 이안이라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 만들었고 양조위라는 멋진 배우가 나왔지마는 홍보의 초점을 일부러 거기에 맞추었던지 아니면 황색언론들이 관점을 거기에 두어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탕웨이라는 배우가 실제 정사를 했다는 둥의 소문으로 영화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상당히 자극적인 에로물 비스무리하게 알려졌고 탕웨이는 그런 배우로 낙인이 찍이는 것 같았죠.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고 케이블 방송으로 좀 봤는데 하필이면 돌리다 걸린 부분이 매우 노골적인 정사장면이 나오는 부분이었거든요.
그 이후 탕웨이는 제게 약간의 선입관을 갖고 보게 하는 배우가 되었고 연기를 상당히 잘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려와도 무시했었죠. 그러다 현빈하고 공연한 ‘만추’를 이번에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선입관을 갖고 있던 저는 만추라는 영화에서도 사실 약간 므흣한 장면을 기대한 게 사실입니다. 사실 중간에 나올 뻔했지요. ^^;
영화는 얼굴에 피멍이 든 탕웨이가 비틀거리며 걷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뒤돌아서서 어느 집으로 달려가는데 거기에는 한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탕웨이는 거기서 흐트러져있던 종이들을 치우더니 그 중 일부를 씹어먹기 시작하죠. 그 때 탕웨이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그 굳어진 표정이 풀리지 않을 것처럼 말이죠.
다음 장면은7년후 교도소에서 어머니의 부음으로 잠시 휴가를 얻으면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뭐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
시애틀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는 어두운 탕웨이의 마음만큼이나 화면이 칙칙합니다. 중간에 현빈과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만 반짝 해가 비치지요. 그래서인가요? 가뜩이나 굳어진 탕웨이의 얼굴은 영화내내 거의 무표정합니다. 살짝 살짝 자신의 마음을 여는 듯 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쉽게도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탕웨이의 얼굴을 계속 따라갑니다. 여기서 저는 탕웨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노골적인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굳어진 마음만큼이나 딱딱한 얼굴을 통해서 감정의 분출을 보여주는 그의 연기에 감탄을 했지요. 저도 영화 보면서 점점 안타까운 맘이 들더라고요.
거의 끝부분에 드디어 터진 울음과 함께 조금씩 맘이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던 탕웨이는 마지막에 살며시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데 마치 고되고 고된 긴 여정을 지나온 여행객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서 안도하는 모습 같은 웃음이었습니다. 참으로 깊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더군요.
‘만추’는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빈과 탕웨이라는 스타가 나오고 감독도 김태용이라는 유명한 감독이 연출했는데도 흥행에는 쓴맛을 보았죠.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멜로영화로 보입니다. 이정도 멜로라며는10여년전에 정말 푹 빠졌던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에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어쩌면 탕웨이의 팬이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