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엠마뉘엘 카레르 '왕국'

꿈꾸는 아빠나무 2019. 1. 24. 11:16
작년 나온 신간을 고르다 눈에 띄인 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구하지 못했고 연말에 구매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책 표지도 그렇고 책소개도 그래서 처음에는 초기 기독교에 대한 소설로 생각했는데 읽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절반은 기독교도(정확히는 카톨릭)였던 자신의 이야기이며 나머지는 바울과 루가의 이야기로 꾸며진 이 책은 만약 신실한(일반적인 의미의) 기독교인이 읽는다면 누구는 신성모독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누구는 시험에 빠질지도 모를 수 있는 약간은 위험한 책이라는 것이 다 읽고난 후의 솔직한 내 느낌이다. 반면에 이 책은 세상에서 살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다시 불가지론자로 돌아선 지식인의 자기 신앙고백으로도 읽힌다(저자는 그런걸 원치 않겠지만).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반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대로 세상의 지식인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다시 불가지론자로 돌아서게 된 이야기이며 두번째 부분은 그 불가지론자가 바라본 초대교회의 바울의 이야기이며 세번째 부분은 바울의 동역자이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누가 혹은 루크의 이야기이다.
첫부분도 상당히 범상치 않지만 나머지 부분의 이야기는 만약 초대 교회의 바울과 루크의 전설적인  선교기를 기대하고 왔다면 크게 뒤통수를 맞을 것이 틀림없는 그런걸 기대한 이들에게는 불경스럽게 느껴질 이야기이다.
기독교적(이게 사실 맞는 표현인지 의심스럽지만은) 시각에서 한참 벗어난 객관적인 사료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과 작가 자신의 작가적 상상력이 덧붙여진 바울과 루크의 이야기는 적어도 위인전같이 박제된 이야기에서 생생한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성경 읽기도 게을리 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과 비교되게 그리고 스스로 믿음을 버렸다고 하는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기도 하며 수많은 자료를 구하고 연구하는 작가의 그 노력이 놀라웠다.
책이 끝날 때쯤 보인 작가의 태도는 과연 이 사람이 믿음을 버린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믿음의 단계에 들어선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여기서 마치게 될 이 책을 나는 진심을 다해 썻지만 책이 다루려 하고 있는 것이 나보다 훨씬 큰 것이기 때문에 이 진심이라는 것은 가소로운 것임을 나는 알고있다. 내가 쓴 이 책은 나의 어떠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똑똑한 자 부유한 자 높은 곳에 있는 자들-모두가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다-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책과 작별하는 이 순간 자문해 본다. 이 책은 과거 나였던 그 젊은이와 그가 믿었던 주님을 배신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름의 방식으로 이들에게 충실히 남아있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작가는 후자가 맞다고 보지만 보통 믿음이라고 하는 곳과는 상당히 떨어진 작가의 상태를 단순하게 그렇다고 삼자가 평하는 것도 아닌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독자의 판단이 작가의 상태를 규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판단은 읽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2000년전 초대교회의 모습이 약간은 생생하게 느껴졌다는 것과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것. 비록 내용중 내가 아는 것과 많은 부분이 다르기도 하고 작가가 확신하듯이 썻지만 논쟁이 되는 부분을 사실인거 마냥 써놔서 약간은 아쉽기도 하지만 모처럼의  즐거움과 충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반인이 이 책을 읽겠다면 적극 권장하고 싶다. 만약 기독교인이라면? 교회에서 듣는 것에 대해 약간이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면 읽어보라고 하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읽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