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Merry Christmas

꿈꾸는 아빠나무 2019. 12. 24. 15:32

어렸을 때 저는 겨울을 4계절 중 가장 좋아했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옷도 그렇고 집안 난방도 그리 좋지 않아서 겨울이 되면 추워서 걸으면서도 동동 거리고 집에서도 이불을 뒤집어써야 밤에는 잠을 잘 수 있었기에 생활하기에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겨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광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했었지요. 지금과 달리 그때는 꽤나 낭만적인 것을 좋아했었나 봐요.

어른이 되면서 둔감해진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계절의 변화입니다. 근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계절이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리 뚜렷한 4계절이라는 느낌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여름이 유독 덥고 길뿐 나머지는 그냥 저냥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여름에 비해 긴 방학이라든지 김장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겨울을 대비한 먹거리 장만 풍습을 봐도 우리나라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는데 최근에는 전 지구적인 온난화 때문인지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이 많은 계절이 돼 버렸습니다. 올해만 해도 12월이 들어선지 한참이 지났고 크리스마스가 내일인데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네요. 거기에 눈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듭니다. 겨울 하면 눈인데 말이죠. 저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나쁘지... ^^;

그렇게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말? 아니 벌써? 언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전혀 아닌데 아무튼 달력은 크리스마스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글을 쓰려고 해도 어째 기분이 나질 않네요. 하.하.하..

2003년에 개봉된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배경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이 크리스마스5주 전부터인 영화는 이제는 현대의 크리스마스 고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저 역시 국내 첫 개봉 시에 보고 많이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커플들이 등장해서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여러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들 중에는 어린 소년소녀도 있고 친구의 신부가 된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도 있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얘기를 보여주는 영국 총리와 비서도 있으며 남편의 불륜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거기에 개봉관에서는 짤린 내용이지만 성인영화를 찍다가 사랑에 빠지는 커플도 나옵니다. 이렇게 다양한 커플이 등장하는데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커플(?)은 극 중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추억의 스타가 돼버린 가수와 매니저의 우정이었습니다. 동성간의 우정을 다루다가 툭하면 동성애로 튀는 요즘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말 그대로 수십 년간 쌓였지만 잘 표현하지 않던 우정의 이야기이지요.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졌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발표한 노래가 오랜만에 히트를 친 이후 이 곳 저 곳에 불려 가는 가수 친구를 뒷바라지하던 매니저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혼자 있게 될 때 전혀 기대치 않던 가수 친구가 찾아와서 그동안 표현치 않던 우정을 보여주는 모습은 다른 커플들과는 전혀 다른, 작 중 주인공중 한 명인 총리의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말 '사랑은 주변 어디에나 있다(Love actually is all around)'에 가장 근접한 주인공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사실 그 존재감을 잘 몰랐던 그리고 잊고 있었던 관계 말이지요.

크리스마스를 다룬 고전 중의 고전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전날 하룻밤 동안의 모험을 통해 그가 잊고 있었던 혹은 잃었던 마음(사랑)을 되찾습니다.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잊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그 되찾음이 극적이지요. 조카 '프레드'가 구두쇠 아니 수전노 스크루지를 동정하는 이유도 그가 삼촌이어서가 아니라 선량했었던 시절의 그가 있었기에 그 시절을 잃어 혹은 잊어버렸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적인 하룻밤을 통해 그는 그 잊고 있었던 것을 되찾고 새 삶을 시작합니다.

러브 액츄얼리의 가수와 매니저의 오랜 우정의 확인이나 스크루지의 갱생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합니다. 일년 365일 많은 날이 있고 여러 명절이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갖고 있는 묘한 힘은 사람에게 뭔가 변화의 힘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에게는 아기'예수'의 탄생일이고 부활절과 함께 가장 큰 명절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날이지요. 날씨도 별로 좋지 않고 경제도 국제 정세도 어수선합니다만 아무쪼록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 특히 즐거움을 되찾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