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은 12월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울 같은 경우 겨울이 돼도 그렇게 많이 추워지지 않고 눈도 드물게 옵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의 서울은 겨울만 되면 한강이 꽁꽁 얼어 봄이 될 때까지 풀리지도 않았고 눈도 매우 자주 그리고 많이 왔었습니다. 눈이 오면 아무리 추워도 손이 완전히 얼어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친구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랬었지요. 그래서 그때는 길가마다 저 같은 애들이 쌓아 올린 눈사람이 세워져 있곤 했었는데 눈 오기 시작 전부터 염화칼슘부터 뿌리는 그리고 골목도 놀만한 땅도 부족한 요즘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지요.
두툼하던 올해 달력이 순식간에 한장 두장 사라지더니 마지막 한 장 즉 12월만 남았네요. 솔직히 실감 나지 않지만 말이지요. 거기에 오늘 날짜를 보니 24일 즉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날입니다. 많은 게 부족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선물을 받는 때는 한정적이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가 바로 그런 때였지요. 그래서 받고 싶은 거 주로 장난감 특히 프라모델에 대해 미리 공작(?)을 하곤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저게 어쩌고 저쩌고 하며 갖고 싶다는 감정을 그득히 표현했지요. 그런 아들의 바람을 부모님은 부족한 살림에도 가급적 들어주시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사정이 그러했기에 대개는 제가 갖고 싶은 것에서 좀 다운그레이드 된 것을 자고 있는 제 머리맡에 놓아두시곤 했습니다. 그것을 아침에 눈 떠서 발견했을 때 비록 제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도 정말 행복했지요.
알프스의 소녀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아마 '하이디'일 겁니다. 동화책으로도 영화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같은 곳을 무대로 한 또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프스 소녀 안네트'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그것으로 원작은 '패트리시아 존'이라는 영국의 작가가 쓴 '눈의 보물'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명으로 '안네트'와 '루시엔'입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절친으로 이야기는 두 사람 간의 갈등과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괜히 비장한 것을 좋아하던 어렸을 때는 결말 부분을 정말 눈시울을 붉히며 읽었습니다만 나이를 좀 먹은 지금은 이야기의 첫 부분이 먼저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모인 아이들이지만 예배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려있는 예배가 끝난 후 아이들에게 나눠줄 커다란 곰 모양의 과자의 크기에만 신경을 쓰다 결국 받게 되자 각자 행복해하는 모습이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소박한 선물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준 기쁨은 정말 컷을 것 같아요.
늘 이맘때면 말합니다만 시간 참 빠릅니다. 일년이 어느새 훌쩍 지나 12월 24일이 다시 다가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설렘도 기대감도 없이 말이죠. 그래서 그립기도 합니다. 그 시절 그 소박했던 즐거움과 기쁨이 말이죠.
지난 일년간 많이 애쓰시고 고생하셨습니다. 나이를 먹어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 그리움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밤과 내일은 맘 편히 그리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