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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긴장감 넘치는 대 잠수함 작전 이야기 '상과 하(The enemy below, 1957)

"전쟁 중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존재는 유보트였다. - 윈스턴 처칠"

우리에게는 보통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잠수함으로 잘 알려진 유보트는 사실 1차세계대전에도 등장해서 당시 영국의 해상 보급선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던 존재였지요. 반면에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라고 명명된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국적 불문하고 공격한 것 때문에 미국 상선이 다수 침몰하였고 그 와중에 많은 민간인이 사망하여 미국 내 참전 여론이 높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참전을 가장 두려워했던 독일제국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었던 샘이지요.

1차세계대전의 패망 이후 패전국으로서 군사력 확충에 제한이 많았던 독일군 특히 상대적으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해군은 어려움이 더 컷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재건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원래 계획보다는 많이 부족한 상태로 전쟁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전력을 가지고 당시 최고의 해상전력을 갖고 있던 영국 해군을 상대로 나름 선전을 벌이지만 야심 차게 준비한 당시 세계 최대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호가 제대로 활약을 벌이기도 전에 침몰되는 등 수상함 전력은 전시 초기에 갈려나가고 말았지요. 

이렇게 해상전력이 밀리는 독일해군을 구한 것이 바로 유보트였습니다. 나중 자살한 히틀러를 대신해 항복선언을 하는 명장 카를 되니치 제독의 지휘하에 아직 대잠 전술이 많이 빈약했던 전시 초기에 영국 함대를 상대로 주력전함을 격침시키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고 이후 영화로도 나온 엘런 튜링의 에니그마를 통한 암호해독이 나오기 전까지 해상 보급선이 생명선이었던 영국에게 유보트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위의 처칠의 말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는 말입니다. 

 

출항하는 유보트 (출처:Britannica)

 

이런 유보트를 다룬 영화가 오늘 이야기 할 1957년 로버트 미첨이 주연을 맡은 '상과 하(The enemy below)'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남대서양에서 초계임무중이던 미 구축함이 유보트를 레이더로 발견하여 추격하고 결국에는 격침하는 대잠 작전입니다. 그 와중에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적이고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도 역시 굉장히 재밌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망망한 대해를 배 정확하게는 군함 한척이 지나가면서 시작합니다. 그 군함의 갑판 위로 배의 군의관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담배를 피우는데 그 뒤로 수병이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배 뒤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난 후 다른 사람들과 새롭게 부임한 함장의 뒷담화를 합니다. 신임 함장이 민간인이었는데 갑자기 함장으로 왔고 따라서 그의 경력과 능력이 의심되며 게다가 그는 원래 병력 회피자였다는 것이지요. 그 말을 뒤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군의관이 선실로 내려가다가 함장실을 지나게 되는데 아까 들은 말이 맘에 걸렸는지 문을 두드리려는 듯하다가 돌아서지요. 그리고는 장교들이 모여 포커를 치고 있는 다른 함실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장교들에게 전에 타고 있던 배가 유보트에 의해 침몰하여 25일간이나 표류하던 사람을 회복되기도 전에 전투함의 함장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그러면서 그를 걱정하는데 다른 장교들은 여기 와서도 함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잘 쉬고 있으니 좋지않냐며 수병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함장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밤이 되어 야간 소등이 실시된 후 초계임무를 계속하는데 레이다병이 갑자기 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잠수함으로 판독한 병사가 보고를 하게 되는데 당직을 보고 있던 부함장이 함장에게 보고를 하자 함장이 경계 명령을 내린 후 탐지된 물체를 쫓으라고 합니다. 갑자기 속도를 내는 배 때문에 놀란 수병들이지만 전투 경험이 없어 전투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놀라기보다는 기대에 차서 레이다실 근처로 모입니다. 그사이를 뚫고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신임 함장 뮤렐입니다. 그는 거기서 사람들이 의심하던 것과는 달리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한 명령을 내리는데 여기서부터 적이 되는 유보트의 함장마저 놀라게 하는 능력을 보여보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계속 유보트를 쫓은다음 공격하는 모습과 그에 대응하여 피했다가 되려 반격을 가하는 유보트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1957년작이니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작품인데 그렇게 오래전 영화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긴장감과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보여줍니다. 60년 전이니 CG는 당연히 없고 순수한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통해 상과 하에서의 두 배의 상황과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 묘사가 상당합니다. 솔직한 말로는 CG가 떡칠되는 요즘 것들보다 더 긴장감 있게 보입니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1958년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수상하지요.

캐릭터도 매력적입니다. 주인공인 뮤렐 함장은 수병들이 수군거린 대로 원래 민간 상선의 항해사 출신이었는데 타고 있던 배가 유보트에 의해 침몰당했고 그는 구조되었지만 같이 타고 있던 부인은 사망하는 사건을 통해 군에 입대한 인물이지요. 그런 사람이었지만 특이하게도 이 사람은 적에 대한 원한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의 임무 때문이었고 자신 역시 임무에 따라 적을 잡으려는 것뿐이라고 말하지요. 거기에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배를 조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의심하던 장교들부터 수병까지 모두 그를 진심으로 따르게 됩니다. 

적이 되는 유보트의 함장 역시 멋집니다. 1차세계대전부터 잠수함에 타 왔던 본 스톨베르그 함장은 자신이 하는 일을 탐탁지 않아합니다.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나치를 싫어하고 기계처럼 시키는 일만 하게 되는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깍아내리는 상황이 못마땅하지요. 하지만 군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독주를 마셔야만 잠이 드는 상황에 빠져서는 말이 통하는 부관(나이와 계급차가 상당하지만 친구라고 부릅니다.)에게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털어놓고는 하지요. 그런 함장을 부관은 두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따르고요. 영화를 보노라면 부관뿐 아니라 다른 승조원들 모두가 역시 그렇지요.

이 개성강한 두 주인공들이 수면 위와 아래 그러니까 상과 하에서 능력을 보여주며 부딪칩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에 감탄하면서 서로를 점점 존경하게 됩니다. 영화의 결론에서는 임무를 사이에 두고 충돌한 두 인물을 통해 전쟁을 통해 갈라섰지만 그걸 넘어서 통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어찌 보면 약간은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결론이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과 달랐다고 하니 아마도 이 영화를 감독한 딕 파월의 생각일 텐데 영화 내내 잘 쌓아온 서사와 캐릭터성덕에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이 영화말고도 잠수함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고 그중 상당수를 봐왔지만 이 영화는 개중 손에 꼽을 수작입니다. 긴장감 있는 이야기와 개성 있으면서도 흡입력 있는 캐릭터 등 올드무비이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기에 한번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Ps. 유보트 함장을 연기한 쿠르드 유르겐스는 이 영화를 높이 평가했는데 그 이유가 이 영화가 미국영화에서 최초로 독일 군인을 악마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가 종전 후 12년 만에 만들어졌으니 전쟁의 트라우마로부터 그때서야 미국이 벗어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걸 보면 아무튼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