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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죽음을 불사한 특공대 이야기 '동경 상공 30초(Thirty seconds over Tokyo, 1944)

보통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에 시작되었다고들 알고 있고 그게 맞기는 하지만 또 다른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며 시작된 중일전쟁을 그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8년이나 진행된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일본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석유를 비롯한 중요물자를 수입하던 길이 막힌 일본이 미국을 1941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선에서도 전쟁이 시작되게 되었죠.

진주만 기습이 있었을 때 미국은 일본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설마 하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당한 기습으로 급박하게 전시체제에 들어서긴 했지만 전쟁초기에는 준비가 잘 되어있던 일본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유일의 식민지였던 필리핀도 맥아더 장군이 열심히 싸웠지만 패배 후 내줘야 했고 몇 번 벌어진 해전도 진주만 공습으로 망가진 태평양 함대의 빈자리를 막지 못해 계속 박살 났었지요. 이렇게 계속된 패배로 미군의 사기가 매우 떨어졌고 이렇게 떨어진 사기를 어떻게든 올릴 필요를 느낀 미군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바로 일본의 수도인 동경을 폭격하는 것.

문제는 당시의 폭격기들의 작전범위가 그리 넓지못했기에 당시 미군기지에서 출격해서는 동경은 고사하고 그 근처도 가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것인데 당시 해군은 어느 정도의 항속거리가 되는 폭격기가 없어서 그것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당시 밀리는 해군 전력을 가지고 일본 본토에 가깝게 가기에는 너무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육군항공대(당시는 공군이 없고 육군에 항공대가 속해있었습니다.)의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싣고 갈 수 있는 데 까지 간 다음 폭격기를 출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것도 상당히 위험부담이 큰 것이 당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항공모함의 배수량이 2만 톤대인데 요즘으로 치면 소형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폭격기를 띄우기에는 좀 작았죠. 그래서 당시 중(中)폭격기인 B-25를 가능한 모든 불필요한 무장 등을 제거하는 개조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고도 띄우기가 힘들어서 이 작전을 위해 모은 조종사들에게 맹훈련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끝에 결국 진주만 기습 이후 4개월 정도가 지난 1942년 4월 18일 항공모함 호넷에서 발진하여 미군 항공기가 공습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하던 일본 그것도 수도 동경을 폭격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항모 호넷에서 발진하는 B-25 미첼 폭격기 (출처 : 위키)

 

1944년에 마빈 르로이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동경 상공 30초(Thirty seconds above Tokyo)'는 제목 그대로 이 작전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둘리틀 특공대는 미국인들에게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영화화가 여러 번 되었는데 2001년작 '진주만'에서도 나왔고 2019년작이지만 올해 상영된 '미드웨이'에서도 다뤄지고 있지요. 심지어는 이 영화가 나온 1940년대에 네 개나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영화는 둘리틀 중령이 작전실에서 지구의를 쳐다보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곧이어 연락이 오고 둘리틀 중령은 필요한 폭격기에 대해 지시를 하고 이 위험한 임무에 자원하는 조종사만 소집할 것을 요구하지요. 그리고는 곧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테드 로슨이 조정하는 폭격기 편대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번 임무에 지원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이 지원한 임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였지요. 비행장에 착륙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임무에 대해 묻지만 다들 몰랐는데 다음날 회의에서 둘리틀 중령이 등장해 설명해 줍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앞부분은 훈련과정 중간은 드디어 동경 폭격의 실행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의 탈출 과정을 담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목에 나오는 폭격 과정이 아니라 탈출 과정이 가장 길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글처럼 폭격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도했기에 이런 구성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경을 폭격한 특공대들은 다시 항공모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이었던 중국에 착륙하기로 했는데 연료가 부족해 대부분 불시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게 되는데 심지어 주인공은 한쪽 다리마저 잃지요. 영화는 그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합니다.

작전을 이끄는 둘리틀 중령을 명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가 연기하는데 사실 그가 등장한 신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카메오 정도의 역활에 그치고 있는데 포스터에서는 가장 크게 등장하지요. 이름값이란... 40년대 뮤지컬 스타로 유명한 밴 존슨이 주인공 테드 로슨 중위 역을 연기를 하는데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랑으로서 사랑하는 부인을 뒤에 두고 위험한 임무에 뛰어들어 수차례 죽을 위기의 순간에서의 긴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나중에 불구가 된 자신 때문에 부인을 만나기도 두려워하는 등 많은 고생하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제작년도는 1944년 그러니까 아직 전쟁 중에 제작된 것이고 그래서인지 당시의 무기들이나 물건들이 그대로 나와 정말 리얼합니다.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적 재미도 상당하고요. 물론 오래전 영화이니 스토리의 진행이 느릿하고 약간은 구태의연한 면이 있지만 이야기와 연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2차대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Ps. 아직 무명이던 로버트 미첨이 조종사 중 한 명인 밥 그레이 중위 역을 연기합니다. 뭐 단역이기에 그다지 큰 역활은 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배우가 갑자기 등장하니 반갑더라고요. ^^